서로에 대한 신뢰 기반의 대화가 일어나지 못할 것이 실망스럽다.
[이해 관계를 돕기 위한 나의 시선]
(1)누군가 나에 대해서 생각해주고 대화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모르는 이에게 오는 명절 축하 메시지도 반가운 순간이 있음을 배웠다. 어쩌면 매우 단순한 노동이고 겉에만 감정이 묻어있는 텍스트일지라도 의심치 않고 글쓴이의 속마음을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yes and: 긍정적인 것을 이어가는 대화법. 꼬리물기처럼 긍정적인 것을 도출하며 아이데이션, 의견 수립 과정을 도와주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나는 긍정의 힘을 믿기에 대화 상황에서 최대한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을 내가 다 알 수 없기에 작은 그룹이라도 개인이라도 취향이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긍정적일 수는 없겠지만, 긍정의 꼬리에 부정의 칼날이 드리울 때 많은 당황을 느낀다는 것을 안다. 단호가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이것이 부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선에서 바라본 대화]
짧은 대화였지만 많은 감정이 오고 갔음을 봤다(그렇게 느꼈다). {생각 1} 진심으로 전달한 메시지에 진심이 아니라고 하였고 그렇지 않고 진심이라고 했음에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의문이 생기고 진심을 전달하는 나의 방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생각 2} 내가 진심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가정하고 텍스트를 살펴보자. 나라면 그것이 진심 혹은 거짓 상관없이 감사함을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이 텍스트를 나를 위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 3} 로봇(AI, 기타 외 자동화 시스템)이 작성한 텍스트에도 감사함을 생각해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들이 우리 삶에 깊숙하게 소통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카카오톡 대화는 상대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누군가의 노력과 리소스에 감사를 표해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결론]
짧은(감정은 그렇지 않지만) 대화 속에서 나눈 것에서 나는 너의 태도(감사를 표하지 않음)에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나아가 극복할 수 있는 생각의 차이일 것인지 그러기 힘들거나 그럴 수 없는 성향의 차이인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성향의 차이라면 너와 더이상 대화를 이어갈 힘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커뮤니케이션 성향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리소스를 투입했고 그것의 결과를 지켜봤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 것인지 배웠다. 단순 인간 관계에서는 성향 차이에 따른 일명 ‘노력형 대화’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